여름 한 상
여름 한 상
오늘은 일찍 눈을 떴다. 점심에 친구가 부산 바닷가 소식을 들고 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재작년까지 서울에 살았던 친구의 집에는 맛있는 국수를 끓여주던 그녀의 뒷모습이 있었다. 잔치 국수였는지, 김치말이 국수였는지... 사실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정성스레 차려준 식탁 위에서 맛있게 잘 먹었던 기억. 나도 정성에 대한 고마움으로 점심상을 맛있게 준비해야지 욕심을 낸다. 우리 집 식탁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걸 내가 꽤 좋아한다는 걸 요즘에서야 느끼고 있다. 아직 나의 부엌은 맛의 실험실이지만, 식탁에서는 도란도란 얘기도 밑반찬이 되고 맛있게 먹어주는 이의 끊임없는 젓가락질은 더할 나위 없는 마지막 양념이 된다. 너무 거창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맛있는 한 끼를 먹었던 기억은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해줄 힘을 주는 것 같다.
잠 못 드는 열대야를 보내면서 이리저리 요리법을 찾아보다가 여름 한 상을 머릿속에 차려보았다. 먼저 여름 보양식이 들어갔으면 좋겠고... 그 옆에는 땀을 내는 음식도 있었으면 좋겠고...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간 더운 식당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음식을 기다리면 기본 차림으로 내주던 얼음을 동동 띄운 냉국도 생각나고... 아 그리고 요즘 아오리 사과가 나왔던데 가벼운 과일 샐러드를 곁들이면 어떨까...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오늘의 차림은 여름 한 상이다. 여름 한 상: 단호박 오리찜, 오징어 볶음, 사과 치커리 샐러드, 오이 미역 냉국
오징어 볶음을 제외하곤 모두 처음 해보는 요리들이라서 긴장한 탓에 아침 세수보다 먼저 찬물에 미역을 불렸다. 그래도 비교적 간단히 건강한 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라서 오전 시간 안에 도전해볼 만했다. 너무 서두른 탓에 오징어 볶음은 이미 친구가 오기 2시간 전에, 오이 미역 냉국은 이미 3시간 전에 완성되어 냉장고로 이송되었다.
살짝 열어둔 문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친구가 두루마리 휴지에 안겨 왔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헤엄쳐왔을 그녀와 함께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우리가 지냈던 시간도 여기서 몇 해 전으로, 앞으로 왔다 갔다... 오가는 이야기들 속에 여름날 점심이 지나갔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거리에 바다가 있어서 좋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가 되면 밀려드는 파도를 타고 멀리 나갔다 돌아오는 우리를 본다. 하고 싶은 일을 세차게 밀어붙이기보다는 나에게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 작년과 지금이 어제와 내일이 또 다른 점일 것이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물결이 만들어 놓은 저마다 다른 모습의 선들을 세어보는 시간.
사과 치커리 샐러드
1. 치커리 한 줌을 식초물에 담근 후 흐르는 물에 씻어준다.
2. 사과를 반개 채썬다.
3. 치커리와 사과를 섞은 후 드레싱을 뿌려 먹는다.
- 간장들깨 샐러드 드레싱(참기름2, 간장1, 들깨가루2, 매실액1, 다진마늘1)
단호박 오리찜(오리고기 양념: 간장1, 올리고당1, 매실액1, 미림1, 다진마늘1)
1. 단호박을 살짝 찐 후 육각형으로 칼집을 내어 뚜껑을 열고 씨와 속을 파낸다.
2. 통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3종 야채(당근, 양파, 피망)를 볶고 훈제오리고기 500g을 볶는다.
3. 양념장을 넣고 다시 볶는다.
4. 단호박 안에 내용물을 넣고 찜기로 쪄낸다.
오징어 볶음
1. 오징어 두마리, 함께 먹고 싶은 야채(애호박, 당근, 풋고추, 홍고추, 양파)를 먹기 좋게
썰어둔다.
2. 파를 볶아 파기름을 낸 후 오징어를 볶고 투명해지면
설탕1, 고춧가루1, 고추장1.5, 간장1을 넣은 후 야채를 볶는다.
오이 미역 냉국
1. 미역 한줌을 불리고 깨끗이 씻어 먹기 좋게 잘라둔다.
2. 오이를 채썰어 준비한다. 풋고추와 홍고추로 어슷썰기한다.
3. 식초 큰술 7, 설탕 큰술 4, 미역, 오이를 함께 버무린다.
4. 물 4컵과 소금 작은술 2.5을 넣고 풋고추, 홍고추, 통깨를 띄운다.
5. 냉장고에 넣어 차게 먹는다. 얼음 두개를 띄워 먹어도 시원하다.
오늘 여름 한 상을 함께 한 사람이 더 있다. 낮에 반가운 손님과 함께였다면 밤에는 남편과 나란히. 그리고 당연하지만 신기한 사실. 하루에 같은 요리를 반복하다 보니 아주 작은 재료의 변화로도 맛이 확연히 달라짐을 느낀다. 저녁에 땀 흘리며 들어온 남편을 위해 오징어 볶음과 샐러드를 만들고, 오리고기를 다시 구웠다. 저녁 오징어 볶음에는 양파 대신 당근을 넣고, 샐러드 소스를 만드는 간장을 낮과는 다른 상표의 간장으로 바꿔보니 맛이 미묘하게 씁쓸해졌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더위에 무뎌진 마음이 요리의 맛으로 다시 색을 입는다. 시간과 재료와 함께 먹는 사람, 사소한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무언가를 찾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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