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바지락 칼국수
들깨 바지락 칼국수
"바지락 300g만 주세요."
지하철 창밖으로 펼쳐진 강을 눈으로 마시며 문득 바다의 비릿한 맛이 그리웠다. 집에 오는 길에 마트로 달려가 바지락을 한 봉지 담아왔다. 어제 본 영화 줄리앤줄리아의 줄리가 살아있는 랍스터를 냄비 안에 넣기까지 고군분투를 생각한다. 나도 살아있는 조개와 생선을 다루는 일이 아직은 무섭기에 싱싱한 해물 요리를 먹고 싶어도 망설이곤 했다. 특히 이렇게나 더운 여름에는 쉽게 걸리는 식중독도 조심해야하니까... 그래도 오늘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저녁은 바지락 칼국수다.
칼국수에 바지락을 얼마나 넣어야 깊은 맛이 날지 모르겠지만 무얼 찾느냐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고기를 주문하듯 300g이 튕겨 나왔다. 300g이 담긴 가벼운 봉투를 보니 둘이 먹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라 껍질을 깐 바지락도 100g 가져왔다. 사실 봉투 안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바지락이 무서웠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뚝딱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던 바지락 칼국수는 여름 휴가로 갯벌에 놀러 와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여행자처럼 느긋해야 맛볼 수 있었다. 바지락이 갯벌에서 먹은 진흙과 소금들을 뱉어내게 하는 '해감'에 걸리는 시간은 반나절…. 바닷물과 같은 염도의 소금물을 만들어 바지락을 풀어놓고 자신이 실제 바다에 있다고 착각해 삼킨 진흙들을 뱉도록 해주어야 한다. 어둡고 편안하게 해주지 않으면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바지락들….
그래도 바지락이 싫어하는 쇠숟가락과 생각만 해도 센 식초를 넣으면 30분에서 1시간이면 해감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아내어 1시간 만에 해감을 마쳤다. 뜨거운 육수에 바지락을 투입하는 순간 랍스터에게 미안한 줄리가 자신을 "랍스터 킬러"라고 부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바지락 킬러..." 바지락 중 하나가 몸을 바스락거릴 때 본능적으로 남편이 잠든 방을 바라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는 해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고생한 남편은 힘들었던 하루를 해감하고 있었다. 남편을 깨워 사이좋게 칼국수를 비우는 사이에 바지락 껍데기가 소원을 비는 탑처럼 쌓인다. 시원한 바지락 칼국수도 먹고 싶고 들깨 칼국수도 생각나서 들깨를 올려 먹었다. 오늘은 해감했다는 사실이 뿌듯해 바지락 칼국수를 끓이던 냄비 밑이 까맣게 타서 설거지하기 힘들어진 것도 돌이 두 번 씹힌 것도 시원한 국물에 후루룩 마실 수 있었다.
재료: 2인분 - 바지락 400g, 해감용 물(물 1L, 소금 3숟갈), 칼국수 생면,
다진 마늘, 집에 남은 대파 몽땅, 양파 하나, 청양고추 한 개, 감자 하나,
후춧가루, 소금 약간, 육수(멸치 20개, 다시마)
1. 바지락을 해감한다. 바닷물처럼 소금물을 만들고 바지락을 투입한 후 어둡게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30분 이상 넣어둔다. 쇠숟가락과 식초를 사용하면 빠르게 해감할 수 있다. 자꾸 열
어보면 바지락이 해감하려다가 숨어버리니까 30분 이상은 가만히 둔다.
2. 바지락이 머금었던 진흙과 바다 찌꺼기가 나와 물이 아주 탁해지면 해감이 된 것이다.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고 채에 거른다. 식초를 썼을 때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바지락을 더
열심히 닦아준다. 바지락이 무서워서 살살 씻어서였을까 돌이 조금 씹혔다.
3. 멸치 다시마 육수를 끓여 국물만 거른다.
4. 육수에 채를 썬 양파, 먹기 좋게 썬 감자를 넣고 끓으면 칼국수 면을 잘 풀어준다.
5. 해감한 바지락을 투척한다. 거품이 올라오면 국자로 걷어준다.
6.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채를 썬 대파와 다진 마늘, 청양고추를 모두 넣고 더 끓인다.
칼국수가 냄비에 눌어붙지 않도록 잘 저어준다.
7. 속이 깊은 사발을 두 개 준비해 칼국수를 공정하게 나누고 들깻가루를 풀어 먹는다.
바지락 껍데기를 쌓아 올릴 그릇을 꼭 준비해야 두 번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오늘의 음료: 남편이 끓인 시원한 결명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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